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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hatfarawaysun
방과 후 3반 놈들과 벌인 내기 축구 시합에 아깝게 져서 두당 오천 원 씩을 헌납하고 더러운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다. 다른 날과 달리 걸어가는 내내 통 말이 없던 정우 녀석이 무슨 삼류 사극 배우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툭 내뱉은 것이다. “야, 하은이, 지금 남자친구 없는 거지.”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훼방 놓는 와중에 나는 간신히 한마디 대답했을 뿐이다. “어.” 그리고 녀석의 얼굴에는 이내 득의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. 참 보는 내가 억울해질 정도로 잘생기긴 했다. 그래서 재수 없지만. “갑자기 그딴 건 왜 물어보냐.” “내일, 고백할 작정이거든. 하은이한테.” 내일이면, 그러니까, 3월 14일. 화이트 데이네. 고백이라. 순간 나는 내 눈 앞에 선, 키 크고 인물 좋고 성적 모범..
그날은 일단 월요일이었다.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들어온 그는 문득, 에스프레소가 몹시 마시고 싶어졌다. 교통카드를 찍고 계단을 두어 칸 쯤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. 우연한 충동은 계단을 오를수록 점점 더 증폭되었다. 사실 그는 커피를 썩 좋아하지도 않고 카페를 들러본 적도 몇 번 없다. 그런데도 그 순간만큼은, 그 에스프레소 한 잔 없이는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. 인생에선 아주 가끔, 이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. 그에겐 그 때가 지금이었고, 에스프레소가 바로 그것이었다. 그는 플랫폼에서 작은 카페 부스를 발견했다. -뜨르르르릉 뜨르르르릉. 알림음이 울린 것은 그와 동시였다. -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. 승객 여러분들께서는……. 그는 손목시계를 살폈다..